2012년 4월 22일 일요일

1. 사진 자르기와 수평 맞추기




사진 보정을 알려주마 1

- 크로핑과 수평 맞추기

독투에 올린 뜬금없는 예고편이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삼삼하다. 하지만 '폰카가 득세한 마당에 뒤늦게 디지털 사진 강좌라니, 이런 뒷북이 있나!' 라는 반응이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재차 얘기하지만,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이른 때라고 했다. DSLR이 뽀대의 상징이 되던 거품의 시절이 지나가고,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즉시 찍고 공유할 수 있게 된 지금이야 말로, 진지하게 사진을 배우기 시작해야 할 최적의 시점이다. 그렇기에 이 강좌의 시작 또한 '사진 찍기'가 아닌 '사진 보정하기'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겠나. 뭐, 사설은 이만 하고...

첫번째 강좌 시작한다, 사진 자르기와 돌리기! 두둥~

시시한가? 천만에.
사진 보정 또는 사진 편집에서 가장 쉽고도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진 자르기, 즉 크로핑이다. (참고로, 앞으로도 '사진 보정'과 '사진 편집'이라는 용어는 별 기준 없이 쭉 혼용해서 쓸테니 헷갈려도 꾹 참도록 하자.)
우선 여러분 하드에 저장된 사진들을 찬찬히 리뷰해보자.  주말 일정을 비우고 주남 저수지로 달려 가라는 것도 아니고, 기십만원 짜리 렌즈를 지르라는 주문도 아니다. 지금 바로 사진 폴더를 열어 봐라. 참 쉽다. 원래 위대한 배움은 다 사소한 신변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다.

자기가 찍은 사진이 좋은 사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 중 하나는 1년 뒤에 그 사진을 다시 보는 것이다. 오감의 기억이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 뜬금없이 사진을 보면 비교적 객관적으로 사진의 시각적인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다. 10년 뒤에 봐도 좋은 사진이면 그 사진은 매우 좋은 사진일 가능성이 높다.

암튼 그렇게 눈길 가는 사진들, 패자부활전에 올릴 그 사진들을 김광석의 다시부르기, 아니 '다시 보정하기' 폴더에 복사해 둔다. 옮기는 게 아니라 복사다. 디지털 카메라 촬영은 언제나 최고 화질로 하고, 원본 사진은 지우거나 변경 없이 평생 가져가는 게 좋다. 50년이 흐르면 하다못해 복식 고증 자료로라도 쓸 수 있다. 이 사진들을 가지고 오늘 해 볼 것은 크로핑, 사진을 잘라서 일부분을 취하는 작업이다.

일단 좌린 하드에서 건져낸 일상적인 예제를 함 보자.


원본 사진 : 주제가 그닥 부각되지 않았고, 배경의 사람 목이 잘려있다는 점도 거슬린다. (딱히 목 잘린 왼쪽 사람이 나라서 유난히 거슬리는 건 아니다-_-)




세로로 크롭 : 목 잘린 2인은 물론 배경 대부분을 제거하고 자기 몸통만한 물통으로 밭에 물을 주고 있는 아이들만을 부각시켰다.


가로로 크롭 : 목 잘린 사람은 시각적 충격이 커서 시선을 확 분산시키지만, 이 정도로 존재감을 줄여주면 괜찮아진다. 밭의 일부를 남김으로서 상황도 설명해주는 친절한 크로핑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위의 '세로로 크롭' 사진을 더 선호한다. '열매 솎기와 크로핑은 남의 손에 맡기라'는 격언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방금 지어냈는데, 들어 봤을 리가 있나-_-) 암튼 크로핑은 아낌없이 팍팍 해 줘야 사진이 강해진다.

참고로, 사람을 자를 때는 목, 손목, 허리, 즉 잘록한 관절 부위를 자르지 마라. 그건 연쇄살인마나 하는 짓이다. 얼굴을 찍을 땐 어깨까지 찍고, 바스트 샷은 가슴팍을 자른다. 상반신 샷은 엉덩이까지, 전신 샷은 발까지 다 들어가게 찍는다. 

예제 사진을 보고 나니, 뭘 하려는 건지 대충 감이 오는가? 그럼 이번에는 좀 더 극단적인 예제를 감상해 보자.



원본 사진 : "조금 일찍 나섰더니 출근길이 여유롭다"




크로핑 : "아름다운 서울의 울창한 강변 습지"



크로핑 + 회전 적용 : "콘크리트 도시 서울의 삭막한 아파트 단지"


어떻게 잘라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진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사진 찍기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투경찰이 화염병 불길을 피하는 장면을 찍으면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폭력 시위' 사진이 되고 전경이 방패 뒤에서 짱돌을 던지는 장면을 찍으면 '보호장구 없는 시위대 살인미수 경찰' 사진이 된다.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촬영자의 선택이다. 사진기를 들이댈 때 찍을 영역을 선택하는 것을 '프레이밍'이라고 하고, 이미 찍은 사진에서 원하는 부분만 잘라 내는 것을 '크로핑'이라고 한다. 크로핑은 프레임을 수정하거나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핵심 중에 핵심인 거다. 


*              *               *

자, 예제 감상이 끝났으니 이제 여러분의 패자부활 사진으로 직접 실습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사진 보정' 강좌가 '사진 촬영' 강좌보다 좋은 점 중 하나는 실습을 즉시 강요할 수 있다는 거다.
사진 파일을 여는 것부터 차근차근 따라해 보자.

참고로 사진 편집에 사용한 툴은 이지포토라는 국산 소프트웨어고 여기서 시험판을 다운받을 수 있다. 기본적인 편집 기능은 포토샵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포토샵이 있는 분은 포토샵으로 따라 해도 되겠다.

1. 파일을 연다.


편집 프로그램 메뉴의 파일>열기 메뉴를 클릭하면 사진 파일을 열 수 있다. 윈도우 탐색기에서 사진 파일에 우클릭;; 하고 '연결프로그램>이지포토'메뉴를 좌클릭;;하여 열면 간편하다. 편집 프로그램에 특정 소프트웨어를 지정해두는 법은.. 주변에 컴퓨터 잘 하는 사람한테 물어보고 해결하자.


2. 선택 툴 선택


왼쪽에 아이콘들이 세로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도구 상자'다. 도구 상자 제일 위에 있는 점선 사각형 아이콘이 '선택도구'이다. 선택도구 아이콘을 클릭하면 오른쪽에 선택도구 대화상자가 열리는데 여기서 스타일을 '비율영역'을 선택하고 폭과 높이를 3:2로 맞춰 준다. 3:2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던 35mm 필름 카메라의 대표적인 사진 비율이다. 구형 똑딱이 디카들은 텔레비전 SD 화면 비율인 4:3 비율로 찍어주기도 하는데, 통통한 사진보다는 길쭉한 사진이 좀 더 시원해 보이는 것같다. 요즘 와이드가 대세이기도 하고, 암튼 3:2로 간다. 만약 세로 사진으로 잘라내고 싶다면 폭에 2, 높이에 3을 입력하면 된다. 


3. 잘라 낼 영역 선택


사진에서 내가 취할 영역을 선택한다. 영역의 좌측 상단에서부터 우측 하단까지 쭉 드래그 하면 점선 네모가 그려지며 영역이 선택된다.


4. 자르기 메뉴


편집>자르기(Crop) 메뉴를 클릭하면 선택했던 영역만 남고 가장자리가 잘려나간다.


5. 화면 확대


잘라 내고 난 모습이다. 편집창 하단의 맞춤 버튼을 클릭하면 이미지가 편집창에 딱 맞도록 커진다. 이건 실제 이미지 파일 크기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화면상에 나타나는 배율이 변경될 뿐이다. 컴퓨터로 사진을 처음 편집하면 화면상에 보이는 사진 크기와 실제 파일 크기, 그리고 인쇄나 인화 했을 때의 크기의 관계가 헷갈리게 마련인데, 아래에 '사진 크기 변경' 대목에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다.


6. 커브 보정 


물가의 풀이 조금 더 돋보이도록 색상보정>커브 메뉴를 클릭하여 커브 보정을 한다. 커브 보정은 오늘 다룰 내용이 아니므로 패스한다. 단축키는 Ctrl+M이다.


7. 필터 적용


편집>필터 메뉴를 선택한다.




여러가지 종류의 필터가 있다. 컴퓨터로 사진 편집을 처음 해 보는 사람이라면 이런 저런 필터 적용 해 보는 게 가장 재미있을 거다. 재미삼아 하나 하나 클릭해보면 신기하다.
나는 '언샵마스크'라는 필터를 사용할 거다. 포토샵에서 '샤픈'이라고도 불리는 필터다. 사진을 좀 더 선명해 보이도록 하는 필더다.



기본 값 그대로 '확인' 버튼을 누른다. 필터 적용하는 법에 대해서는 역시 이후에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샤픈 필터는 자주 쓰는 기능이므로 조금 부연 설명을 해 본다. 이지포토의 언샵 마스크는 기본값이 꽤 강하게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웹에 업로드할 크기로 사진을 줄일 땐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
1. 사진의 긴 쪽 길이가 2560 픽셀이 되도록 사진을 줄인 다.
2. 언샵 마스크 필터를 기본값으로 적용한다.
3. 다시 긴 쪽 길이가 640 픽셀이 되도록 사진을 줄인다.
이렇게 샤픈을 적용했을 때 왠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이미지가 선명해지는 것같다. 
근데 오늘 일케 다 써버리면 나중엔 뭔 얘길 해야 하는 거냐-_-;;

8. 사진 크기 조정


편집>사진크기조정 메뉴를 선택한다. 단축키는 Ctrl+Alt+I 다.

픽셀 치수의 '폭'을 640으로 변경한다. 그럼 높이는 3:2 비율에 맞게 저절로 427로 변경 된다.

아, 픽셀이란 이런 거다.


어떤 사진의 크기가 640X427 픽셀이라는 것은 저런 점 273,280개로 이루어진 사진이라는 뜻이다. 매우 촘촘한 모자이크인 셈인데,  내가 쓰는 십메가픽셀 - 천만화소짜리 디지털 카메라의 원본 파일은 4032X2688픽셀이다. 10,838,016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다.
  
640X427은 웹에 올릴 용도로 사진을 줄일 때 내가 항상 써 온 치수다. 딴지일보에 사진을 올리려면 가로 폭이 630인 것이 '현재' 디자인에 딱 맞지만, 그야 언제 바뀔지 모를 일이고.. 암튼 나는 옛날부터 인터넷에 올리는 사진은 640X480 사이즈로 저장해왔다. 3:2 포맷의 사진을 찍은 후부터는 640X427이다. 720X480으로 하는 게 나을 뻔 했는데... 640이라 타이핑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글케 됐다. 어쨌거나 딴지일보에 게시하기에는 640X427이 나쁘진 않다.

요즘 들어서는 이렇게 작은 이미지를 만들어 놓는 게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PC속도가 빨라져서 수메가짜리 원본 파일도 휙휙 열어볼 수 있고, 인터넷 게시판에도 용량 제한 없이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메일로,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주고받기 위해서는 백 킬로바이트 대의 작은 파일을 만들어 두는 게 좋다. 640X427 사이즈는 약간 애매하고 720X480이나 그 밖에 SD, HD, 풀HD방송용 포맷 사이즈가 여러모로 유용하다.

암튼..
640X427 사이즈로 줄였으니 이제 저장을 해 보자.

9. 다른 이름으로 저장


파일>다른 이름으로 저장 메뉴를 클릭하고 파일을 저장한다. 나는 보정을 가한 사진은 원본 파일명 앞에다 s또는 l자를 붙여서 따로 저장한다. 작을 '소'라서 S고, L은... 뭐지? 암튼 간단한 트리밍이나 커브 보정만 가한, 원본 크기의 '큰' 파일에는 l자를, 640X427 사이즈로 축소한 파일에는 s자를 붙인다. 웹에 올릴 때는 s로 시작하는 파일을 올리고, 인화 사이트에 주문을 할 때는 l로 시작하는 파일을 올리면 된다. 십 년 넘게 이렇게 쓰고 있는데 딱히 불편한 점이 없다.

자, 울창한 강변 습지 사진을 완성해서 4대강 홍보팀-_-;;;;에 잘 전달해 줬다면, 이제 녹색당 홈페이지;;에 쓰일 수 있을법한 삭막한 아파트 숲 사진을 만들어 보자. 통계든 논문이든 사진이든, 작성자의 주관적 선택은 이렇게 손쉽게 진실과 객관으로 포장된다.


10. 작업 내역 되돌리기


여태 했던 작업 내역이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 제일 위 '열기'를 클릭하면 처음 열었을 때 상태로 되돌아간다. 암실에서 사진 뽑다가 컴퓨터로 작업했을 때 가장 감명깊었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실행 취소.

11. 선택


아까 배운 거니 쉽게 할 수 있을 거다


12. 사진 회전


자르고 보니 아파트들이 살짝 기울어져 있다. 사진의 가장자리가 렌즈 왜곡의 영향을 받아서 기울어진 거다. 정확히 하자면 마름모꼴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고, 사진 회전 후에 기울이기를 함 더 해 줘야 한다. 하지만 이 사진에서는 수직선이 강조되어 있고 수평선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덜하니, 그냥 사진 회전만 적용하도록 하겠다.



시계방향으로 1도 회전시켜준다. 이러면 아파트들이 똑바로 서게 된다. 아파트가 바로서야 오피스텔도 바로 선다. 아 뻘소리-_-;; 고작 1도 정도면 굳이 안 돌려줘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0.5도에서 1도, 미묘하게 기울어진 걸 특히 신경써서 바로잡아줘야 한다. 10도 20도 홱 돌아간 사진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옷을 입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치수는 커 보이는 옷을 뒤집어 입고 택을 주렁주렁 달고 있으면 '아 장물 수집 컨셉이구나'라고 넘어갈 수 있다. 깔끔한 캐주얼을 갖춰 입었는데 티셔츠의 세탁 안내 라벨이 드러나 있다면 이건 애매하다. 보는 사람은 오히려 '지적을 해 줘야 하나..' 하며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사진도 뭔가 애매하게 어긋나 있으면 쉽게 외면당한다. 애매함은 세상에서 두번째로 나쁜 덕목이다.

1도인지 2도인지는 어떻게 아냐고? 일단 돌려 보고 눈으로 확인하자. 선택 툴이나 윈도우 크기 조절 탭을 이용해서 수직선이나 수평선에 자를 대듯이 대 보면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자꾸 돌려 보고 감을 잡아야, 찍을 때도 똑바로 찍을 수 있게 된다.  돌리고 보니 덜 돌아 갔다면 파일>Undo, 단축키로는 Ctrl+Z 누른 뒤 더 많이 돌려 본다. 너무 많이 돌아갔어도 역시 Ctrl+Z 누른 뒤 각도를 더 작은 수로 입력하고 돌려주면 된다.
여기서 잠깐, 중요한 팁이 또 나왔다.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건 좋지 않다. 시계방향으로 1도 돌리고, 또 1도 돌리고, 또 1도 돌리지 말고 3도를 한방에 돌리라는 거다. 이건 웬만한 다른 보정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전, 크기변경, 필터 적용, 색상보정 등은 보정을 가할 때마다 조금씩 품질의 열화가 일어난다.


13. 크롭 영역 선택


돌리고 났더니 가장자리에 흰 색 삼각형들이 생겼다. 위에서 해 본 대로 사각형으로 선택한 뒤 크롭해준다. 참고로 저 정도 살짝 잘라내는 건 트리밍이라고 부른다. 트리밍인지 크로핑인지 구별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수평을 맞추라는 거다. 0.2도 이상 기울어진 사진은 반드시 해 줘야 한다.


14. 너무 심한 크로핑


원본 사진의 어느 부분을 크롭하여 확대한 사진인지 감이 잡히는가? 원본 중앙 부분의 손톱만한 영역을 확대한 장면이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사진의 극히 일부분을 확대하여 선명한 결과물을 얻는 것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이처럼 흐릿할 뿐이다. 사진 크로핑에 재미를 붙이다 보면 사진 찍을 때 광각 렌즈로 눈앞의 장면을 죄다 넣어서 찍는 버릇이 생길 수 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의 화소수가 높아져서 실제로 유용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사진의 일부분만 잘라 쓴다는 것은 그만큼 화소와 해상도에 손해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다음 사진을 보자.


 
동일한 위치에서 망원 렌즈를 이용하여 풀 프레임으로 잡은 사진이다. 원본을 능가하는 사본은 없다. 결국 찍을 때 프레이밍을 잘 해야 한다. 원하는 프레임이 안 나오면 렌즈를 지르든지 발품을 팔든지 해야 하는 거다. 크로핑은 결국 좋은 프레이밍을 위한 훈련이다. 찍었던 사진 전부에 칼을 대 본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크로핑을 해보자.
컨트라스트, 색상, 부분 보정 등등 앞으로도 배울 게 수없이 많지만, 일단 찍었던 사진을 싹둑싹둑 잘라 보는 거. 이것이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가장 쉽고도 근본적인 방법이다.


*               *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한한 공간에서 특정 장면을, 연속적인 시간에서 특정 시각을 잘라내어 철커덕 박제해버리는 것이다. 내가 찍은 사진에는 그 장면을 바라보던 내 시선이 담겨 있다. 내 사진을 리뷰하는 것은 내 시선을 리뷰하는 것이고, 그것을 두 자로 표현하면 다름 아닌 '관조'다.

내가 무엇을 응시하고 무엇을 외면하는지, 내가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리뷰한다는 것, 그리고 그 프레임을 강화해 보고 변조해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끊임없이 자문해 보는 것. 그건 어쩌면 내 시각이 얼마나 편향되어 있고 협소한지를 적나라하게 확인해 나가는, 전혀 유쾌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 보자. 외로워도 슬퍼도 꾸준히 해 보자. 그것이 바로 사진이다.

스크롤 내리느라 고생하셨다, 이상.



2012년 4월 20일 금요일

사진 보정을 알려주마 - 0

0. 들어가며

하나의 유령이 한때 한반도를 배회한 적이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라는 유령이. 아이폰과 갤럭시, 대화면 스마트폰과 구유럽의 각종 제조사들이 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신자유주의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동남아의 유수한 여행지에서 단박에 한국 여행자들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퍼져나갔던 DSLR 유저들은 초소형 사진모듈 앞에 전율했으며, 너도나도 묵직한 가방을 내려놓고 전화기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디지털카메라라는 유령은 이렇게 허무하게 퇴치되었고, 인민들은 스마트폰 사진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갔답니다. 끝.

되도 않는 패러디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 수년 전 우리나라에는 DSLR 돌풍이 일어났고, 누구나 멋진 사진을 찍을 꿈에 부풀었다. 수많은 사진 교본이 출판되었고, 온라인 사진동호회의 출사모임은 흥행가도를 이어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자신이 찍어내는 사진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진기들은 다시 장롱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스마트폰이 그 공백을 메워나갔다.
아마도 지금이 '디지털 사진 강좌'를 시작하기에 가장 부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부적절하다니까 왠지 구미가 당긴다.
 
*                 *                 *
문득 밤길이 예뻐, 자전거 핸들을 삼각대 삼아 사진을 찍었다.
'봄이도다 밤이다' 사진을 감상하며 간단한 퀴즈를 함 풀어보자.
다음 중 색조 보정을 한 사진은 뭘까?



봄이도다 밤이다 1 




봄이도다 밤이다 2 



뭐는 2루수야.. 가 아니라, 정답은 두번째 사진이다.

설명을 좀 더 붙여보자면, 위 두 사진은 벚꽃과 개나리 우거진 밤길을 주황색 나트륨 등이 밝히고 있는 장면을 연달아 찍은 것이다.
첫번째 사진은 화이트밸런스를 자동으로 설정하고 찍은 사진이다. 꽃이고 잎이고 온통 주황 일색이다.
두번째는 도로에 그어진 흰 선을 기준으로 커스텀 화이트밸런스를 설정하고 찍었다. 결과적으로는 푸른 기가 많이 돈 것이, 화이트밸런스가 제대로 안 맞았나보다. 그래서 꽃과 잎이 그나마 자연색에 근접하도록 커브 보정을 해 주었다. Blue 채널의 중간 톤 밝기를 많이 낮춰 주고, Red와 Green채널의 중간톤 밝기를 조금씩 올렸다. 

그럼 질문을 바꿔서 다시 한 번 물어보자, 1루수가 누구야? 아.. 미안타. 이 동영상을 너무 재밌게 봤는지 말이 자꾸 헛나온다.
다시 물어보자, 그럼 어느 사진이 더 좋은 사진일까? 

나트륨 가로등의 색상이 유사하게 표현된 첫번째 사진일까?
흰 벚꽃잎과 노란 개나리의 색이 그나마 사실적으로 찍힌 두번째 사진일까?
후보정을 많이 했다니 두번째 사진은 탈락일까?




봄이도다 밤이다 3 



나는 이 사진을 꼽겠다. 화이트밸런스가 잘못 측정되어 푸른기가 도는 사진지만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든다. 그래서 컨트라스트를 조금 높여 틀어진 색감을 더 강조했다. 기억 저편에 잠재되어있는 밤길의 정취가 이런 것 같기도 하다, 내 비록 삭막한 가로등 아래 밋밋한 아스팔트 길을 달리고 있지만.
파랑, 보라, 청록이 서로 잘 어우러지고, 어두운 톤과 밝은 톤이 적절하게 분포되어, 달빛 아래 고요한, 또는 새벽녘의 상쾌한 숲길을 거니는 환상이 느껴진다. 노출과 화이트밸런스를 정확하게 측정해서 찍었는지, 후보정을 했는지 안 했는지, 사실 이런 건 좋은 사진을 가리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내 맘에 들면 그만 아닌가.

'어머, 근데 그게 어째서 사진이야? 상상화는 그림으로나 그리시지?'

그게 사진 맞다.  밤길의 파란 벚꽃 사진도 사진이고 불타는 연평도 사진도 사진이다. '벚꽃'이나 '연평도'라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사진은 사진이다.


*                *                 *

사람들은 대개 '사진 보정'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야 할 사진에 감히 조작이 웬말이냐?'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거다. 하지만 실은 '사진'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문제가 있다.

사진 寫眞 - 진실을 본뜬 것

무려 참 眞, 진실이라는 고상한 가치를 아무런 사심없이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바로 사진인 것이다. 사진이라는 문물을 처음 보고 번역어를 만들어내야 했을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의 문화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도 같다. 이미 지고지순한 사진인데 심지어 그것을 보정補正 - 바로잡는다니, 말도 안된다. 이는 조작의 영역이다!

그럼 이 단어를 함 보자, 포토 + 그래피

포톤캐논이 광자포니까 포토는 빛이고, 그래피티가 벽그림이니까 그래피는 그린다는 뜻이다. (Phos가 희랍어로 빛, Graphos는 그리다, Graffitti는 이태리어로 낙서.. 이런 재미없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점, 참고하라고 적어둔다-_-) 즉 화가는 붓으로 그리고, 낙서가들은 스프레이로 그리며, 사진가는 빛으로 그린다는 거다. 포토는 수단이고, 그래프는 그리는 사람 맘대로. 개인적으로 이런 무심한 단어 조합이 좋다.

강조하건대 사진이란, 객관이라는 허울을 쓰고 빈곤한 의도를 순수로 포장하는 따위의 나약한 매체가 결코 아니다. 빛이라는 붓으로 내 느낌과 의도를 적극적으로 표현해낸 이미지, 그것이 바로 사진, 아니 포토그래피란 말이다. 듣고 있나, 이 땅의 모든 기계적 중립주의자들아!
어, 갑자기 논조에 삑사리가 났다-_-;;
암튼 각설하고, 여차저차 해서 다음 시간 부터는 '사진 보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실은 수 년 전부터 지인들에게 손쉽게 던져 줄만한 사진 매뉴얼을 구상하고 있었다. 근데 사진 찍는 대목부터 시작하려니 다들 사진기 기종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같더라.
그래서 이번엔 사진 보정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핸드폰이든 똑딱이든 DSLR이든, 누구나 하드를 뒤져 보면 찍어놓은 사진들이 웬만큼 있지 않겠나. 다운 받은 사진밖에 없다고??-_-;; 암튼 우선 좋든 나쁘든 일단 찍어 놓은 사진부터 지지고 볶고 해도 썩 훌륭한 사진을 완성할 수 있다. 진짜다. 사진의 절반은 암실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유념하자.
사진 보정을 하다 보면 자신의 시각 취향을 돌아볼 수도 있고, 보정으로 불가능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찍는 방법의 탐구로 이어지고, 나아가 자신에게 필요한 사진 장비에 대해서도 감이 생길 거다.

그럼 다음 이시간에 뵙겠다. 이상.


2012년 4월 13일 금요일

죽은 철쭉

오랜만에 회사 옥상에서 철쭉을 찍었다.



 
 지겹도록 춥고 길었던 지지난 겨울


겨우내 담배를 피우며
철쭉 꽃눈을 지켜보았다.


그로부터 한 해 내내 열심히 철쭉잎을 찍고
지난 가을부터 잊어버렸더랬다.


한 사이클 충분히 찍었으니까.


올 봄에도 어김없이 돋아났을테지.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새 순은 돋아나지 않았다.


 죽어 있었다.


 살아남은 녀석들도


고단해 보인다. 



 지난 늦가을 무더위에
낯선 벌레들이 몇 마리 보이나 싶었는데,


뜨겁고 좁은 옥상에선
버티기 힘들었나보다.


 
퇴근하면서 살펴본 회사 근처 화단도 사정은 비슷했다.


 옥상보다는 좀 낫긴 하다.


작년에 잘 피었으니 올 해도 그렇겠지..


 그렇게 쉬운 법칙같은 건 없다.


...


 예전엔 분명히 외고 있었는데
마무리 지으려고 떠올려 보니 이 순서마저 가물가물한다.

밤이도다 봄이다..

봄이도다 밤이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