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1일 수요일

화각에 관하여

저는 렌즈를 구입하기 위해 조언을 구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합니다. '단지 멀리 있는 사물을 크게 찍기 위한 용도만으로 망원렌즈를 구입하지는 마라'
철새를 연구하거나 몰래 적군 기지의 정보를 수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위의 용도가 정확할 겁니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진가들에게는 '망원렌즈'와 '망원경'은 분명 용도가 다른 물건입니다.

사람들마다 세상을 보는 방식과 만들고 싶은 사진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렌즈 화각별 촬영 가이드'같은 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포스트는 '좌린이 화각을 이용하는 방식' 정도가 되겠네요.

1. 200mm입니다. 35mm 필름 풀프레임 환산화각으로 320mm이지요. 중망원에 해당합니다. 저는 이정도의 망원렌즈를 끼웠을 때, 피사체와 피사체가 겹쳐져서 보여지는 느낌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렬로 늘어앉은 사람들의 겹쳐진 옆모습이 화면 가득히 들어차 있고, 그 중 한 사람에게만 촛점이 맞아 있다... 뭐 이런 사진들이 찍고싶어지죠.


2. 100mm (환산 160mm)입니다. 저는 이정도 화각을 단일 피사체만을 정확하게 묘사하는데 주로 사용합니다.


3. 50mm (환산 80mm). 인물사진에 최적이라는 화각이지요. 저 역시 인물의 상반신 사진에 많이 이용합니다. 이제부터 슬슬 표준화각에 들어서기 시작하는데요, 저는 표준화각대에서 피사체와 피사체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사진을 주로 찍는 것같습니다. 망원화각에서 직렬로 늘어선 피사체들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다면, 표준화각에서는 병렬로 늘어선 피사체들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 다르겠군요. 여기서 병렬이란 세마리 오리가 늘어섰다는 게 아니라, 오리가족과 파티션 위의 이름표가 병렬로 늘어섰다는 뜻입니다. 찍고 보니 별 관계가 없긴 한데.. 암튼 그렇다는 얘깁니다-_-


4. 22mm (환산 35mm). 역시 표준 화각 영역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환산화각 3-40mm대를 제가 은근히 안 쓰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요. 대부분의 똑딱이 카메라들이 이정도 영역에서 주로 사진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오히려 상당한 비호감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좌린이 잘 사용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사물간의 병렬적인 관계로 표현해야 할지, 공간의 느낌을 살리는 표현을 해야할지 헷갈려하기 때문.. 이라는 이유가 가장 적당할 것같습니다.


5. 10mm (환산 16mm). 광각 영역입니다. 광각에 흥미가 매우 많은 편입니다. '공간속에서의 피사체'를 표현하는 게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어렵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어렵기 때문에 쓸 말도 별로 없습니다.-_-




짐작하시겠지만, 좌린 역시 방금 나열한 방법대로만 렌즈를 이용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실은 '길가에 신기한 꽃이 피었는데, 펜스 넘어서 풀숲 헤치고 들어가서 찍기가 귀찮아서' 망원렌즈를 끼우게 되는 일이 훨씬 많다고 봐야죠. 하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펜스와 수풀이 앞쪽에 아웃포커스 되어 있고, 배경 또한 아웃포커스 되어있고, 그 사이에 은근하면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꽃 사진'은 망원렌즈로만 찍을 수 있다는 겁니다.
렌즈의 화각은 분명 다른 표현을 가능하게 합니다.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자꾸자꾸 찾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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