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25일 토요일

여행지의 기억

칠레 산티아고의 허름한 여행자 숙소. 시설은 열악한 편이지만 숙박비가 매우 저렴해 이스라엘 배낭여행자의 아지트가 되다시피 한 숙소이다. - 칠레 산티아고 2003.06


여행의 기억은 불현듯 찾아와 나를 비현실적인 시공간에 데려다주곤 한다. 그것은 환영처럼 어른거리기도 하고 꿈 속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내부가 온통 시퍼런 색으로 칠해진 방, 형광등 불빛마저 퍼렇다. 아아, 정말 춥다. 산티아고의 6월은 겨울이다. 우리의 겨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차고 습한 공기가 스멀스멀 몸 속으로 파고든다. 끓인 물을 주스병에 담아 안고서야 잠이 들었다.

융프라우 길목에 있는 작은 마을 벵발트에서 내려다본 라우터브룬넨 마을의 야경. 거리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에 띈다. - 스위스 라우터브룬넨 2004.01


Wengwald는 융프라우 올라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민박집에서 라우터브룬넨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온 세상이 흰 눈에 덮여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 등장하는 그림 같다.

이집트 시와에서 지프로 두시간 이상 달려가면 작은 오아시스에 터전을 마련한 한 베르베르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이집트 시와 2003.12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어둠이 세상을 완전히 삼키기 전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막은 더욱 특별해진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이 황량한 땅에 붉은 기운이 감돌며 조금씩 어두워지고 조금씩 싸늘해진다.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 것은 아닐까 잠시 착각에 빠진다.
완전한 어둠. 모래 위에 누웠다. 한 가득 별들이 쏟아진다. 유랑을 하던 베드윈들은 이 별들을 벗삼아 외로움을 달랬겠지.
‘우리 집 이름은 million stars hotel 이에요.’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 아이의 이름은 이브라헴
Siwa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오아시스 마을, 마을이래야 집 한 채, 한 가족과 일꾼까지 합쳐 열 명이 산다.
불을 피우고 주위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막내에게 노래를 시킨다. 귀엽다.

런던의 한 버스 정류장. 큰 도시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어떤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 영국 런던 2004.02


각국의 수도는 저마다 특징이 있지만, 또한 그 모두를 아우르는 ‘대도시’ 특유의 느낌이라는 것도 있다. 모여 살기에 적당한 인구를 한참 초과해버렸다는 느낌. 조금씩 버려지고 어딘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는, 쓸쓸한 느낌.
익숙한 방법으로 캐쉬포인트에서 돈을 찾고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각자 바쁜 걸음으로 사라지는 무표정한 사람들 틈에 섞인다. 남에게 애써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도시가 주는 익명성에 마음이 슬그머니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코스모폴리탄 2005.7.)

댓글 2개:

  1. 사진 한장 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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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니 사진들 내 블로그에 '좌린의 암실'이라는 코너 하나 만들어서 넣으려한다.

    썰렁한 내 블로그가 니 사진으로 인해 빛나면 좋겠다. ㅎㅎ

    괜찮겠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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